Art in the Anthropocene
Artists collaborating with CAS and their annotated work
예술가의 공간: 조춘만
Artworks of Chun-Man Cho (photographer)조춘만 사진가
“도대체 왜 그는 산업 시설을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려면 우리는 사진의 역사와 산업의 역사, 그리고 한국에서 산업이 표상해온 역사를 알아야 한다. 조춘만이라는 개인은 그만큼 많은 것을 응축하고 있다. 사실 그는 그런 모든 역사를 생각하면서 작업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찍고 싶은 산업 경관을 좇아서 충동적으로 작업한다. 하지만 그 충동은 역사적인 것이다.
현대의 산업 경관은 강철의 괴물들이 사는 곳이다. 그의 사진 속 물질의 밀도는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오히려 아름답다. 조춘만 덕분에 우리는 최소한 산업미에 대해서만은 기록의 역사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도 매우 정교하고 감각적으로 최상급의 기록들을 말이다.”
– <조춘만의 중공업> 사진집 소개글 中

<화학공장>
“파이프 안에는 맛과 향기가 부드러운 액체가 흐를 확률은 없다. 그 안에는 맵고 독하고 무서운 놈들이 높은 압력으로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굵기가 다 다르고 이리저리 꺾어져 있는 파이프들은 그 무서운 놈들을 다루느라 고심한 흔적을 보여준다. 만일 어떤 조각가가 파이프를 이용하여 조형물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아무 기능도, 위험 물질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기능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텅 빈 것이므로 이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은 긴장을 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조춘만은 이 화학 공장의 파이프라인을 분명히 조형물로 보고 찍었다. 그것은 다른 산업 분야에서는 볼 수 없는 화학공업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대단히 특수한 구조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긴장을 품고 있다.”
– <조춘만의 중공업> 中

<푈클링엔을 만나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독일 푈클링엔 제철소를 보며 문득 이 말이 떠오른다.
2013년 프랑스 극단 오스미시스의 대표인 알리 손에 이끌려 기차를 타고 십여 분을 달렸다. 기차에서 내린 곳은 독일 푈클링엔 역사였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거대한 산업시설물은 나의 시야를 채워버렸다. 언뜻 보아도 제철소 공장임을 알 수 있었다. 산업시설물은 역사에 인접해 있었고, 붉게 녹슬어 있는 모습에서 꽤 오래된 공장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몇 발짝 앞서가는 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장으로 다가가는 몇 분 동안 왠지 모를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노동자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출입문 앞으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이 휴일인가? 공장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라고 생각할 때쯤 알리가 말했다.
이 제철소는 문을 받은 공장이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거대한 기계 죽음 앞에서 가슴에 치미는 슬픔을 느꼈다.
…
거대한 공장이 한꺼번에 뚝딱 만들어지는 법은 없다. 하나의 세포가 분열하듯 철판 조각과 H빔이 하나둘씩 이어져 기계 구조를 만들고, 인체 심장 같은 모터와 펌프에 신경을 연상시키는 전선과 통신케이블이 연결되고, 혈관 같은 배관에 연료가 흐르면 기계는 생명을 가진다. 생명을 가진 기계는 생존하기 위해 숨을 쉬고 열을 발산한다. 육지에 고정되어 연료를 공급받으며 생존하기도 하고, 하늘과 바다를 유영하기도 한다. 살아 있는 기계가 참 좋다. 뜨거운 열과 거친 숨소리 토해내는 기계 모습이 정겹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포효하는 기계는 살아 있다.”
– <Völklingen 산업의 자연사> 中 발췌. 글 조춘만.